[천자 칼럼] 퇴조하는 '핑크 타이드'

입력 2018-10-30 18:45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베네수엘라에 좌파 성향의 우고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1999년만 해도 남미에는 ‘신세계’가 펼쳐지는 듯했다. 귀를 솔깃하게 하는 ‘무상 정책’ 시리즈에 유권자들은 환호했다. 곧 남미 12개국 중 10개국에 반미·좌파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섰다.

‘핑크 타이드(pink tide·사회주의 성향 좌파 물결)’로 불리는 이 거대한 흐름은 약 20년간 남미 정치를 ‘공짜 복지’ 이슈로 물들였다. 그 사이 선심성 복지 정책으로 경제가 거덜나고 국가 재정은 파탄 상태에 빠졌다. 생필품뿐만 아니라 식량까지 바닥났다. 그러자 민심이 돌아섰다.

뒤늦게 환상에서 깨어난 국민들은 최근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앞세운 우파 정권을 잇따라 선택하고 있다. 그저께 남미 최대 국가 브라질에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선자는 “더 이상 사회주의, 공산주의, 좌파 포퓰리즘을 기웃거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핑크 타이드’ 퇴조 바람은 아르헨티나에서 먼저 불었다. 2015년 기업 경영자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페론주의(복지 우선의 아르헨티나 국가사회주의)’에 취한 좌파 정권이 퇴출됐다. 칠레에서도 올해 우파 정치인이 당선됐다. ‘남미의 ABC(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로 불리는 세 나라뿐만 아니라 파라과이와 콜롬비아까지 우파 정권으로 돌아섰다.

유럽 정치권에서도 중도 좌파의 퇴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최근 지방선거에서 득표율 20%에도 못 미쳐 150여 년 역사상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 프랑스의 사회당과 네덜란드의 노동당, 체코의 사민당 득표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이탈리아 민주당도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다.

유럽은 그나마 자생적인 사회주의 정당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국 노동당은 ‘제3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했고, 독일은 ‘하르츠 개혁’으로 지지기반과도 싸우면서 국가경제를 살리려 애썼다. 프랑스 역시 정권의 명운을 건 노동개혁으로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비해 남미는 교조적 좌파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멸의 길을 걸었다. ‘핑크 타이드’의 진원지였던 베네수엘라의 올해 물가상승률은 9월까지 49만%에 이른다. 고국을 등진 국민이 최근 3년간 230만 명이나 된다. 식량부족 때문에 비싼 빵을 만드는 제빵사를 체포하는 촌극까지 빚고 있다.

‘핑크 타이드’의 퇴조를 보면서 국정과 민생의 중엄함을 새삼 되새긴다. 국가 경제의 3요소로 꼽히는 경제 성장, 자본 축적, 완전 고용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더하기’ 대신 ‘빼기’와 ‘나누기’에 몰두하면 성장도 분배도 어렵게 된다. 생계의 근본 수단인 일자리 또한 일거리가 있어야 만들 수 있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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